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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이야기]①모래에서 찾아낸 금맥
작성자 웨스트팩 날짜 17-08-0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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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가 1983년 개발한 64K D램 반도체. 문화재청은 국내 산업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2013년 이 반도체를 등록문화재 제563호로 지정했다. (사진: 문화재청)

1983년 64K D램 첫 개발…30여년 뒤 세계 1위 신화

"땅을 파봐라, 10원 한장 나오나…"

지금도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다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딱 알맞다. 한국의 수출 1위 품목은 반도체인데 반도체의 주원료가 규소, 영어로는 실리콘(silicon)이다. 규소는 모래에서 추출한다.

규소가 반도체 재료로 많이 쓰이는 건 전기가 잘 흐르는 도체(금속)와 흐르지 않는 부도체(비금속)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구하기 쉽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껍데기인 지각에서 산소 다음으로 많은 게 규소(27.7%)다. 모래나 바위, 흙이 모두 규소를 포함하고 있다. 워낙 풍부한 재료라 도자기와 유리부터 제습제(실리카겔), 가슴이나 코의 보형물까지 활용범위도 무궁무진하다.

흔히 말하는 반도체(집적회로)란 순도 99.999999999%(9가 11개 붙는다)의 규소로 커다란 원판(웨이퍼)을 만든 뒤 그 위에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부품(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커패시터 등)을 새겨놓고 잘게 잘라낸 것(칩)을 말한다. 태양전지에도 실리콘이 쓰이지만 순도는 반도체에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칩을 이른바 '지네 다리(리드)'가 달린 회로기판에 옮기고 그 위에 에폭시 수지를 입히면 사진이나 TV에서 보던 네모난 모양의 반도체가 나온다.

설명은 쉽지만 칩을 만들기까지는 수백 단계의 공정을 거쳐야한다. 최대한 작고 가벼우며 용량은 크게, 그러면서도 반도체가 구동할 때 사용되는 전력은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출시한 512기가바이트 SSD(반도체로 만든 저장장치의 일종)는 DVD 한장 용량의 영화(4GB) 128편을 저장할 수 있는데, 그 크기가 가로 2㎝, 세로 1.6㎝, 두께 0.15㎝에 불과하다. 무게는 1g. 부피와 무게가 줄어든 만큼 노트북에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10나노 미세공정으로 반도체를 양산했다(삼성전자)', '72단 적층에 성공했다(SK하이닉스)'는 뉴스도 결국은 반도체 기술력의 척도가 '경박단소(輕薄短小)'에 있음을 뜻한다. 특히 걸어다니는 컴퓨터인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작으면서도 메모리 용량이 큰 반도체가 더욱 중요해졌다.
국내 기업들이 처음부터 이런 재주에 능했던 것은 아니다.

삼성이 반도체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1983년 처음 개발한 제품은 64킬로비트 D램으로 선발기업과 4년 반의 기술격차가 있었다. 변변한 기술력이 없던 시기라 미국의 마이크론으로부터 도면을 넘겨받아 제작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던게 1990년 독자적으로 16메가비트 D램을 개발하면서 대등한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고 2년 뒤 64메가비트 D램을 내놓으면서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이 생산한 반도체는 PC시장의 폭발적 확대에 힘입어 개당 50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금보다 비싼 게 반도체였다. 덕분에 1992년 반도체는 의류를 제치고 처음으로 수출품목 1위에 올랐다. 대한민국의 산업지형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작고하기 두달 전인 1987년 9월말 용인 기흥공장을 찾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영국은 증기기관 하나를 개발해서 세계를 제패했다. 우리 반도체도 그런 역할을 하라고 시작한 것 아닌가?" (진대제, '열정을 경영하라' 책내용中)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올해 2분기 삼성은 인텔을 제치고 전세계 반도체시장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가 석달간 반도체에서 올린 매출만 17조원이 넘는다. SK하이닉스 또한 6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두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46%로 한마디로 경이적인 수준이다. 1980년대 초 "무모한 시도"라며 수모와 조롱을 당하던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세계를 제패한 꿈같은 날이 찾아왔다.

이학선 기자 naema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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